조중현

11.05 2016 INTERVIEW DATE

독스, 그래픽 디자이너

서울 성동구 성수동

조중현은 네이버 모바일 앱의 디자인 카테고리를 담당하는 직장인이자 2인 디자인 스튜디오 ‘독스(Dogs)’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3년 전 대학 시절에 함께 보낸 친구들과 성수동에 8평짜리 첫 작업실이자 아지트를 만들었다. 현재는 작은 마당이 딸린 주택을 개조한 두 번째 작업실에서 여전히 친구들과 함께 일과 놀이의 경계가 없는 시간을 보낸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친구들과의 아지트. 그와 친구들의 공간에서, 서울에서 작업실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권혜민

처음 성수동에 작업실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건국대학교를 다녔어요. 모교가 성수동과 가깝다 보니 학과 졸업 전시 주제에 항상 성수동 개발 같은 지역과 연계된 작업이 포함되곤 했어요. 학교 다닐 때 브랜딩 작업을 처음 하게 됐는데, 그게 성수동에 위치한 카페 ‘자그마치’예요. 그때 성수동이랑 인연을 맺게 됐어요. 일을 하면서 학교 안에만 머물기 싫어서 친구들과 작업 공간을 알아봤는데, 처음에는 서울숲 옆의 8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이었죠. 다섯 명 정도가 썼던 작업실인데, 모여서 그냥 술 먹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지금의 위치로 작업실을 옮긴 이유가 있나요?

쫓겨났어요. 젠트리피케이션인지 모르겠는데, 진짜 말도 안 되게,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집주인 딸이 미국에서 돌아와 카페를 할 거니까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렇게 말했어요. 그래서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여기를 발견했죠. 우선 가장 쌌고, 단독주택이라는 게 엄청난 장점이었어요. 그리고 여기가 기운이 좋은 공간이에요.(웃음) 조훈현 9단이 살던 집이거든요.

여섯 명의 친구가 함께 쓰는 작업실이라고 들었어요. 어떻게 모이게 됐나요?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학교 중심으로 시작했어요. 같은 학교 다른 과 사람들이 뭉쳤죠. 이후에는 같은 학교가 아닌 사람도 공간을 공유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거쳐 갔어요. 딱히 작업실을 함께 쓰는 사람들에 대한 기준이 있다기보다는 뭔가 열심히 해보려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 것 같아요.

들어올 때 돈을 내나요?

그럼요. 공짜로 장소를 제공할 수는 없죠. 저희는 무조건 1/n이에요.(웃음)

많이 들어올수록 좋은 거네요?

네, 많이 들어올수록 좋아요.(웃음) 단기로 친구들을 받기도 하는데, 가끔 10명을 채울 때가 있어요. 그럼 한 달에 한 사람당 10만 원만 내면 돼요. 서로 부딪칠 일은 거의 없어요.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니까 좋은 시너지가 생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의상 디자인을 하는 친구가 옷을 만들면 저는 자연스럽게 패키지 디자인이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작업하게 돼요. 제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 땐 영상 작업을 하는 친구가 모션 그래픽을 도와주기도 하고요. 서로 많은 도움이 돼요. 그리고 거리가 멀면 커뮤니케이션이 어렵고 함께 작업하기도 힘든데, 그냥 옆에서 “이거 이렇게 해줘” 라고 말하면 바로 원하는 대로 구현할 수 있어서 좋아요.

여기는 작업실이기도 하지만 친구들과의 아지트이기도 하잖아요. 이 공간이 스스로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일반적으로 이런 공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주변에서 작업실에 대해 물어보면 늘 이렇게 얘기해요. “월 10만 원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려운데, 어렵지 않거든요. 저희에게는 어떻게 보면 도전에 대한 트로피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어찌 되었건 함께 모여 부딪치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뭘 해도 할 수 있겠다는 느낌도 들고요. 앞으로도 서로 협업하는 공간, 상생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렵지만 어렵지 않다는 걸 알기까지가 쉽지 않아요.

많은 분들이 판타지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로만 받아들이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걸 모르는 것 같아 아쉬워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용기를 내는 것 또한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웃음) 첫 작업실은 2000/60(만 원)이었고 지금 작업실은 33평인데 1000/100(만 원)이에요. 다 밝혀야 다른 분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보증금 문제만 해결되면 진짜 이 삶이 어려운 게 아니에요. 저희는 처음에 함께 시작한 친구들이 보증금을 나눠서 냈어요. 그리고 이렇게 애들이 공간을 만들고 에너지를 내야 동네의 조그만 전단이라도 하나 바뀌고, 동네가 바뀌면 결과적으로 서울이 바뀌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혹시 작업실이 성수동에 있었기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나요?

서울숲 옆에 있던 이전 작업실은 상가 건물 1층에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지나가던 분들이 안으로 들어와 보시고, 결국 주변에서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다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작업실 멤버들과 포스터도 만들고 간판도 만들고 메뉴판도 만들었어요. 보난자베이커리, 뚝떡, 이런 곳이요.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분들이 클라이언트였죠.(웃음) 그때가 지금보다 지역적 기반으로 더 재미있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 홍대에 작업실이 있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거예요. 홍대 같은 경우는 이미 붐업 단계가 지났잖아요. 성수동은 아직 소규모 상인이 많고 그들끼리 더 잘해보고 싶어 하는 게 있어서 저희 같은 사람을 받아들이기 쉬웠던 것 같아요.

여섯 명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는 게 아니라 공간만 함께 쓰는 거죠?

네. 그리고 저는 권기영이라는 친구랑 ‘독스’라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독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요?

지금은 없는데 원래 작업실에서 고양이를 키웠어요. 스튜디오 이름을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고양이를 키우니까 우린 개를 하자” 해서 독스가 됐어요.(웃음) 독스는 패러독스의 ‘독스’이기도 해요. 저희가 모순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저랑 기영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인데 마침 <저수지의 개들>이라는 영화도 있잖아요. 인스타그램에서 이 작업실 위치 검색을 하면 저수지로 나오게 등록해놨어요.(웃음) 저희는 브랜딩 위주의 작업을 많이 해요.

집이 광명이라고 들었어요. 회사는 분당이고요. 작업실에서 보낼 시간이 있는지 궁금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언가 자신의 것을 하려고 할 때 그 몰입도가 거의 고3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고3 때처럼 자신의 시간을 모두 쏟아붓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시간을 쏟고 싶어요.(웃음) 분당에서 7시쯤에 퇴근하면 8시에 작업실에 도착해요. 그럼 작업실에서 12시까지 있다가 집에 가요. 집에 도착하면 12시 30분이에요. 이 생활의 반복이거든요. 주말에도 딱히 뭐가 없고 회사에 안 나가니까 거의 작업실에만 있는 편이에요.

너무 일만 하는 거 아니에요?

사실 일과 유희의 경계가 따로 없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이라는 게 다 놀이와 관련된 것 같아요. 시각적 유희라는 맥락이 있기도 하지만, 작업을 해나가는 게 스스로 만족스럽다면 그 자체로 놀이가 될 수 있거든요. 그게 진짜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요.(웃음)

RECOMMENDED PLACE

한강철교 아래 올림픽대로 잠실종합운동장 방향 1차선

여의상류 IC 교차로 -&amp;gt; 노량대교 구간

“한강철교를 지날 때면 언제나 멀리 광활한 하늘로 시선이 갑니다.”

조중현 디자이너가 서울에서 꼽은 가장 인상적인 곳은 한강철교 아래의 올림픽대로다. 1986년에 만든 도로로, 매일 차를 타고 작업실로 향하는 길에 마주하는 곳이다. 여의 상류부터 이어지는 긴 회전 길이 다른 길과 합쳐지며 시야가 탁 트이는데, 왕복 10차선 왼편에 흐르는 한강과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녹색의 한강철교가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서울의 압도적인 인상과 살아 있는 도시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조중현은 이곳을 지날 때 서울의 동맥인 올림픽대로를 심방처럼 생긴 여의도를 통해 통과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한다.